비가 찔끔찔끔 내리던 찝찝한 첫날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한 10시 조금 넘은 정도.
돌아오면서 구루메 시티에서 사온 야식을 먹으며 첫날 지출 금액을 살펴보았는데 이것 저것 다 해서 11,000엔 가량이 나오지 뭔가 ;
가장 큰 주범은 역시 저녁으로 야마나카에서 먹은 모츠나베.
처음부터 모츠나베는 좀 럭셔리하게 먹으려고 가격대가 센 가게를 찾았지만 모츠나베 2인분에 야채 추가, 공기밥 둘, 김치 한 종지에 4,000엔이 넘는 가격은 가성비 측면에서 좀...;(맛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가성비 측면에서)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겨우 몇 조각에 맛도 없는 김치가 무려 600엔 가까이 한다는 것.
참고로 일본에서는 밑반찬이 안 나오고 돈 주고 시켜야 한다. 적어도 내가 4박 5일 동안 가본 가게는 다 그랬음.
그리고 일본 맛집을 알아보려면 tabelog.com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윙버스 정도 되는 사이트.
아무튼 앞으로는 최대한 아끼기로 하고 둘째 날 일정을 짰다.
출국하기 전에 간략히 짰던 계획으로는 둘째 날에 고쿠라와 모지코(모지항)을 방문하는 거였는데 주말에 유후인을 가면 안 그래도 넘쳐나는 외국인 여행객에 일본인 여행객까지 겹쳐 인산인해를 이루지 않을까...하는 누님의 의견에 따라 둘째 날 유후인에 가기로 대폭 수정.
마음을 먹었으면 계획을 짜야지.
노트북에 랜선을 연결하고 인터넷을 켜고 유후인으로 가는 열차 시간을 알아보자.
우리가 끊은 패스는 북큐슈레일패스니까 JR큐슈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열차 예약 및 시간표 및 소요 시간 등을 알 수 있다. (사이트를 통한 예약은 안 해봤다. 회원 가입이 필요한 듯)
열차 시간을 알아본 결과 오전 7시 45분에 특급유후DX가 첫 차이고 그 다음은 9시 경에 유후인노모리(유후인의 숲) 열차가 있다.
유후인에 갈 때는 유후인노모리 열차를 타는 게 유명하지만 거기서 얼마나 시간을 보낼지 몰랐고 갔다와서 또 오후에는 후쿠오카 시내를 구경해야 했으므로 갈 때는 특급유후DX 첫 차를 타고 돌아올 때 유후인노모리호를 타기로 결정.
그런데 여기서 또 발생한 문제가 아직 레일패스 개시를 안 했다는 거다 ;
우리가 끊은 레일패스는 3일권인데 국내에서 구입한 패스는 아직 개시가 안 된 상태이며 일본에 가서 미도리노마도구치(녹색 창구)에서 개시하는 날부터 적용되는 패스.
아직 개시를 안 했으므로 새벽같이 달려가 개시를 하고 열차를 타야 한다는 계산이 된다.
거기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까지 먹으려면...; (안 먹자니 아깝다. 이것도 다 포함된 돈인데 )
아무튼 새벽에 일어나 레일패스를 개시하고 호텔로 돌아와 조식을 먹고 역까지 달려가 기차를 타는 빡센 아침 일정을 세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가 대략 새벽 1시 반 정도.
Day 2
1. 호텔에서 유후인까지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눈을 떠보니 5시 50분.
누나는 아직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참고로 우리 누나 아무리 발로 차도 안 일어난다. 아주 미치겠다.
우여곡절 끝에 누나를 깨우고 대강 준비하고 하카타역까지 달려가니 6시 40분.
서두르면 대충 시간이 맞겠다 생각하고 공항에서 오면서 거쳤던 하카타역으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내 삽질의 연속이다 ;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신경 끄고 레일패스를 개시해주는 미도리노마도구치를 찾는데 아무리 봐도 녹색 창구가 안 보인다 ;
뭔가 안내소 같은 것이 보여 가보니 7시부터 업무 시작이란다.
어라, JR큐슈 사이트에서 미도리노마도구치는 5시 즈음부터 시작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뭔가 이상해서 역무원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매우 당황하면서 횡설수설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가보라고 해서 가보니 아까 그 문 닫은 안내소 ;
매우 이상해서 일단 밖으로 올라와보니 눈 앞에 보이는 JR 하카타역 ;
우리가 내려갔던 곳은 지하철 하카타역이고 레일패스 등등은 지상층에 있는 JR 하카타역에서 관장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
허겁지겁 달려가 레일패스를 개시하고 7시 45분 하카타발 특급유후, 3시 48분 유후인발 유후인노모리호까지 예약하고 나니 6시 55분.
호텔로 돌아가 아침 식사를 하기엔 시간이 상당히 애매하다.
그래도 일단 돈 낸 거니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달려가 광속으로 먹고 다시 달려와 열차에 타기로 하고 조식을 다 먹고 나니 7시 30분이다.
호텔에서 15분 안에 하카타역까지 가서 기차를 탄다는 게 물리적으로는 가능한데 그게 어디 말처럼 되나.
몇 번 플랫폼에서 타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달려가서 역에 도착하니 거짓말 안 하고 7시 44분 ;
급한 마음에 개찰구 기계에 표를 넣었는데 이상하게 문이 안 열린다.
에라, 모르겠다 뚫고 달렸다. (나중에야 안 건데 레일패스로 끊는 표는 일반적인 개찰구를 통하는 게 아니고 역무원에게 표와 패스를 보여주고 따로 통과하는 거였다. 역무원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헉헉대며 몇 번 플랫폼인지 확인하고 올라가 정차해있는 기차에 몸을 날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
분명 지정석을 받았는데 이 열차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다.
이상해서 다시 내렸는데 아뿔싸, 맞은 편 플랫폼에 특급유후DX가 서 있다 ;
열차가 좀 짧은 열차다보니 내가 올라간 계단에서는 머리 부분이 안 보였던 거다.
다행히 아직 출발은 안 했길래 뛰어가서 타려고 폼 잡는 순간 열차가 출발.
놓쳤다.
정말 10초만 더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쩌겠나.
샘솟는 짜증을 물리치고 다시 창구로 돌아가 다음 유후인노모리호를 예약했다 ;
이때 레일패스였으니 다행이지 그냥 끊었다면 아주 피눈물을 흘렸겠지.
한 시간 반 정도 남는 시간 동안 할 게 없어서 들어간 곳이 JR 하카타역 치쿠시구치 쪽으로 나가면 있는 스타벅스.
여기서 요 일본 한정 사쿠라 텀블러를 샀다.
핑크색도 있었지만 그건 사이즈가 커서 녹색 숏사이즈로 구입.
스타벅스에서 유후인에서의 대략적인 루트를 정하고 시간이 되어 유후인노모리호를 타러 갔다.
유후인노모리호는 내부 바닥 등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레트로한 느낌이다.
하카타역에서 유후인까지는 2시간 약간 넘는다.
특급 열차이긴 하지만 신칸센은 아니라 조금 시간이 걸린다.
2시간 넘는 시간을 달리며 하카타역에서 산 에키벤도 먹었다.
둘이 같이 먹으려고 양이 좀 되는 걸로 샀는데 맛은 그냥 저냥.
여담으로 에키벤 사면서 젓가락 좀 하나 달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그냥 줄 법도 한데 절대 안 준다. 매정해.
유후인노모리호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일본 시골 풍경 같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2. 유후인
유후인에 도착해서 역 사진 찰칵.
유후인 자체가 관광지로 유명하긴 하나 동네 규모는 시골 마을이라 역이 작고 귀엽다.
열차에서 내린 다음 가장 먼저 간 곳은 관광안내소.(역 안에 여자 역무원 둘이 지키고 있었다)
지도 같은 건 우리나라에서 무슨 관광 관련책을 들고 가든 현지에서 받는 지도만 못 하다.
일단 지도 하나 받고 처음 계획대로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역에서 빌려주는 일반 자전거가 있고 JR에서 빌려주는 전동 자전거가 있다던데 전동 자전거는 어디서 빌리는지 몰라 그냥 일반 자전거를 빌리기로.
역 주변을 스캔한 결과 자전거는 보이지도 않길래 여기서 빌려주는 것 맞냐고 물으니까 어제 비가 와서 자전거 주차장 문을 닫아 놨단다. 지금 당장 열어주겠다고 미안하다면서 달려가더라.
...그럴 것까진 없는데 약간 미안.
자전거는 시간당 200엔인가 했다.
일단 신원 확인한다면서 여권 한 번 띡 보고 이름 적으래서 적었는데 정말 이름만 적었다.
그냥 자전거 버리고 열차 타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
우선 자전거를 타고 킨린코(금륜호)로 향했다. 더 멀리 갈 생각은 없었고 가는 길에 보이는 가게 몇 군데에 들러볼 생각.
가면서 Bee Honey에 들러 선물로 줄 꿀을 사고 오르골의 숲, 유리의 숲, 금상 크로켓 정도에 들러 긴린코에 도착.
긴린코는 생각보다 물이 맑더라.
신기한 건 수원쪽에서 나오는 온천수와 호수 바깥쪽의 차가운 물 때문에 안개가 낀다는 것.
단적인 예로 수원쪽에서는 잉어가 헤엄치고 돌아다니는데 반대쪽엔 얼어죽은 잉어가 둥둥 떠있었다 ;
아무튼 긴린코에서 사진 왕창 찍고 돌아오는 길에 B-speak에서 롤케익 하나 사고 오는 길에 본 라면 가게에서 라면 한 그릇 먹었다.
라면 가게에는 한국 손님이 많이 오는지 한국메뉴판도 있고 뭔가 본격적. 맛도 제법 괜찮았다.
그런데 가게 안에 손님으로 보이던 아저씨 한 명이 한국에서 왔다니까 매우 관심을 보이며 중얼중얼 떠들기 시작.
한국은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철저하다면서 일본은 틀려먹었다느니, 자기는 우리나라 드라마 야인시대를 좋아한다느니... 사실 사투리가 심해서 반은 못 알아들었다 ;
돌아오는 열차를 타기 전에 역 안에 있는 족욕장에서 간단히 족욕을 했다.
원래 입장료를 받지만 아무도 체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슬쩍하고 나왔음.
입장료를 낸 사람들은 수건을 하나씩 받아 오던데 아무래도 입장료가 그 수건값인 듯.
우린 수건을 챙겨가서 그냥 하고 나왔으니 수건 하나 챙겨가세요.
아까 출발할 때 첫차를 놓치고 돌아오는 열차도 4시 넘어서 있는 열차를 예약해뒀는데 시간상 처음 끊은 3시 열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그걸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대략 6시 정도.
3. 캐널시티 하카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북오프 하카타점에 잠깐 들렀는데 확실히 물건이 많긴 많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북오프와의 차이점이라면 게임 소프트와 하드웨어도 판다는 점?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시간 넉넉하게 보물찾기를 해야 한다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듯 싶다.
숙소에 돌아와서 잠깐 쉬고 나니 7시길래 텐진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고 숙소에서 가까운 캐널시티 하카타로 출발.
캐널시티 하카타 역시 쇼핑몰이 주를 이루는데 건물 자체는 플로어 가이드가 상당히 보기 편하게 되어 있어서 어지간하면 헤매지 않을 듯하다.
일단 여기서 한 바퀴 비잉 둘러보았는데 지하1층에 지브리샵이나 점프샵, 울트라맨 특별샵(?) 등이 있고 귀여운 소품샵이 몇 개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었다. 누나는 여기서 4,000엔 주고 신발 하나 구입.
1층에 서점이 있긴 했지만 규모가 작아서 내가 사려던 책은 한 권도 없었고.
대강 둘러보다보니 폐점시간인 9시가 다가와 이곳 식당가에서 뭔가 먹기로 했다.
처음에는 라면가게가 몰린 라면 스타디움에서 또 라면을 먹을까 했지만 공사중이라서 후게츠(풍월)이라는 가게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다. 누나 말로는 국내에도 있는 가게라고.
오코노미야키와 야끼우동을 먹었는데 본토라 그런가 맛이 제법 괜찮았다.
무엇보다 뒤집어주러 오던 알바가 귀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가까운 나카스로 가서 야타이가 어떤가 보자고 결정.
가는 김에 타이토 스테이션에 들러 뽑기를 했고 쵸파 하나 건졌다 ;
이 녀석 배에 스위치가 있는데 누르면
이럽니다.
4. 나카스 야타이
강가를 지나가며 야타이에서 먹는 아저씨들을 봤는데 우리나라 포장마차와 비교해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였다.
그런 주제에 가격대는 상당해서 과감히 패스.
본격적으로 나카스로 넘어가면 환락가라길래 여기도 패스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어제 먹다 남은 것과 유후인에서 사온 롤케익을 먹으며 셋째 날 계획을 짰다.
참고로 롤케익도 무지 맛났다. 전날 초콜릿샵에서 사온 숏케익 정도는 아니었지만.
===========================================================================================
둘째 날은 첫째 날에 비해 많이 걷지는 않았다.
일등공신은 유후인에서 빌린 자전거.
유후인에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보로 긴린코까지 가던데 나 같았으면 아마 가면서 욕 좀 했을 듯.
자전거를 빌린 건 아주 잘한 짓이었다고 지금도 스스로에게 칭찬중이다.
유후인에 갈 일이 있다면 자전거 빌려서 다녀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그리고 유후인에서 온천물에 몸을 담가보진 않았지만 유후인에 관광객 엄청나게 많더라.
여기서 우리말, 저기서 우리말.
게다가 우리가 간 날엔 카이스트 교수님들이 단체로 놀러와서 야유회 분위기를 내시는 바람에 얼마 전에 온양온천 갔던 느낌이 났다 ;
느긋하게 온천욕만을 즐기고 싶다면 유후인 가는 길목에 있는 아마가세 등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