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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자의 '변명'

by 페이티 20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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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자의 변명~Godfrey Harold Hardy~

우선 원제를 알아보기로 했다.
Mathematician's Apology. Apology의 뜻을 찾아보면, 처음 뜻이 사과, 사죄. 두 번째 뜻이 정당성 주장, 변호, 변명 등이 나온다. 번역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 중 어디가 ‘변명’인지 적어도 나로서는 구분이 어려웠다. 책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받은 사람이 비단 나 하나였을까.


저자 G.H.하디(이하 하디)는 진지함, 유용성, 무용성 등의 개념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수학적 재능이 있어 남들과는 달리 수학에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수학은 여타 하찮은 수학과는 달리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연구한 진지한 수학은 소위 말하는 무용한 학문이지만 유용한 학문,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고 평범한 가치만 발휘하는 수학은 학문으로서의 함량 미달이다...’

조금 과장이 섞이기는 했지만 대강의 틀은 이렇다. 즉, 하디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연구하는 수학(순수 수학)만이 진정한 수학이고 다른 수학(응용 수학)은 하찮은 학문이라는 식이다. 또한, 하디는 수학이라는 학문은 일부 재능 있고 창조적인 젊은이들에 의해 연구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수학은 죽은 수학이라 한다.(실제로 그는 L.호그벤과 같이 과학, 수학의 대중화를 고려한 학자를 진정한 수학자가 아니라면서, 매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순수 수학자가 아닌, 공학도로서 수학을 배우는 나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의 사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수학은 수학 자체로서 학문의 가치를 지니지만 모든 학문이 다른 학문과 아울러져 컬래보레이션을 이루는 현대에 그 다양성을 무시하는 학문에 얼마만큼의 효용이 기다릴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하디는 자신의 수학이 무용하다고 한다. 즉 실용성이 없는 학문이므로 현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자연스레 파괴적인 용도로도 쓰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의 사상이 전적으로 긍정적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수학이라는 것은 애초에 기초 학문, 다른 학문의 틀이 되어주는 학문이다. 수학이 없이 과학이 있을 수는 없다. 과학뿐인가? 어떤 학문이든 수학이, 수학적 사상이 쓰이지 않는 학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디가 말한 ‘무용한’ 학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글의 말미에 직접 밝혔듯이 창조할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유용한 학문이 아닐까.


하디는 자신을 예술가라 했다. 그는 항공역학, 탄도학을 예로 들며, 일반적으로 유용하다 여겨지는 학문인 응용 수학은 그 결과로 파괴성을 수반하기에 순수 수학은 완전히 무용하며 심미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그가 글을 쓸 때만 해도 상대성이론과 원폭이 갖는 관계성을 알지는 못했지만)과연 그의 생각대로 수학은 아름다운 학문이다. 주로 근사치를 다루는 응용 수학을 비롯한 다른 과학과 달리 수학에 있어서는 대부분 정확한 해답을 구현할 수 있다. 증명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수학의 논리 정연함에서는 구조적 아름다움까지 찾을 수 있다.

어느 수학자의 ‘변명’이라기에는 다소 아집조차 느껴지지만 하디의 글에서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한 점 후회조차 없는 ‘학자’의 삶이 녹아들어있다. 학자로서의 하디의 모습에 귀를 기울인다면 모 서평에서처럼 수학에 문외한이든 아니든, 그 누가 읽어도 가슴 한 구석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좋은 글이 아닐까 싶다. 수학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어려워하는 마음이 더 강한 나도 그랬기에.(글의 전개 방식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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