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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운명의 여자~

by 페이티 200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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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도 포스팅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내게 좋아하는 작가 너댓 명을 꼽으라면 그 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작가가 니노미야 히카루와 시기사와 카야, 이 둘이다. 둘의 작풍이 유사한 탓도 있겠지만 이들이 그려내는 분위기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시기사와 카야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 체크하지 않을쏘냐.



이번 신간은 작가 후기에서도 언급되듯이 처음에는 밝고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언제나처럼 다크해도 괜찮아요'...라는 편집자의 요청이 있었고, 결국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의도가 어느 정도 남아있었는지 기출간된 다른 작품보다는 조금 더 밝고 소프트한 양상을 보인다.(출판 레이블도 지금까지와는 성향이 약간 다른 곳.) 표현에 대한 수위도 그렇지만 상황에 대한 수위의 허들이 높지 않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대강 요약하자면 남자 주인공인 사이토 하지메(斉藤 一)의 이름이 어찌어찌해서 하이픈(-)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 첫 만남을 시작으로 벌어지는 여자 주인공 에비사와 유카리의 사랑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 사랑이 꽤나 전도다난하다는 것. 에비사와에게는 어엿하게 애인이 있고 천연계의 마이 페이스인 그녀의 성격도 하이에게는 종잡기 어렵기만 하다.
하이의 경우에는 항상 악의 없는 에비사와의 마이 페이스에 말리기만 하는데, 안 좋은 지난 기억으로부터 가슴으로는 에비사와에게 마음이 있지만 머리로는 거부하는 상태. 초반부에 스스로도 이런 상태를 인지하지만 이미 주위에는 자기 마음이 다 드러난 상태였고 어느새 뒤로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더라...는 것.
정말이지, '그녀는 내 인생을 좀먹는 운명의 여자'라는 문구가 이리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잠깐 눈물 좀 닦고.

시기사와 카야의 이전 작품군에서는 사랑 속에서도 그 내면에 담긴 원초적인 인간, 개인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순애적 측면의 사랑보다는 담백하게 사랑을 하는 이들의 '각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인물들의 심리를 담담하면서도 시리게 묘사하는 능력은 그녀만의 강점이 아닐지. 일견 무미건조한 듯하지만 그래서 더욱 와닿는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개인적 이야기보다 하이와 에비사와, 둘의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감상(아직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이지만 그녀의 감성은 여전하다. 깔끔하고 절제된 터치 덕에 오히려 더욱 아프게 보이는 사랑과 인간관계에서도 한 가닥의 위트를 남아있는 것은 그녀의 탁월한 센스 덕이겠지.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때」

"에비사와 씨라는 사람, 남자인 줄 알았어"

"아.. 그래도 그에 가깝다고 봐야지. 정말 곤란한 사람이야. 매번 그런 식으로...
아! 그리고 애인도 있다던데..."

"그런 건 상관없잖아."

「어째서」

"문제는 나보다 그녀가 하지메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건 아니냐는 거야"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던 걸까...」

1권의 메시지 전반을 아우르는 한마디는 뜻밖에도 하이의 전 애인인 아사코에게서 들을 수 있다. 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새 에비사와는 하이의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셈. 이는 에비사와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 앞으로의 둘의 행방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자면 에비사와는 개인적인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상이기도 하다.. 화려한 매력보다는 이런 일상적인 매력에 시선이 더 간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싫지만은 않은 타입.
하이에 대해서는 살짝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앞으로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하이를 생각하면 동시에 어딘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뭐, 어찌 되었든 2권이 나올 때까지 즐겁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덧1. 1권 마지막이 마지막이었던 만큼 2권이 더욱 기대된다.
     AV로 점거된 방에 에비사와를 들이게 된 하이!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할 것인가!

덧2. 뒤에 실린 단편인 '멸망해버려라'도 재미있는 이야기.
      전하고 싶지만 전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테마가 잘 살아 있다.
      버튼 누르는 게 귀찮아 게임을 접었다는 여주인공에게는 격하게 공감을...

덧3. 동작가의 작품인 '9월병', '탐닉하게끔 되어 있다.'에 각각 등장하는
      '에비사와 미도리'와 '에비사와 카오리',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에비사와 유카리'는 3자매라는 설정.
      .....사놓고 묵혀두기만 한 9월병도 어서 다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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